목적지로 가는 여러가지 길

 

저의 외삼촌이 아들을 낳고 싶어서 아이를 셋이나 낳았습니다. 어린 나이에 그 모습을 보며 ‘여자가 애 낳는 기계도 아니고’… 라는 마음이 들며 걱정했었어요. 그 후로 10년이 지난 지금, 저도 똑같이 아이 셋을 낳았습니다. 지금 제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.
결혼 전에는 샤워하고 화장한 후 차려진 밥을 먹고도 준비 시간이 30분 정도면 충분했습니다. 결혼 후에는 냉장고 안에 뭐가 있을까 확인만 하고 나와도 한 시간은 더 걸리더라구요.
시간강사 시절, 출산으로 인해 행여나 학생들 수업에 지장을 줄까 봐 전전긍긍했던 날, 자유로에서 러시아워에 걸려 예원학교 입시 채점에 늦을까봐 발을 동동구르며 불법 유턴을 했던 일 등 이젠 전부 추억이 되어버렸네요.
저는 임신 후에도 연주랑 강의를 병행하며 만삭이 될 때까지 정말 일만 했어요. 그러다가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, 모두 올 스톱 되는 상황이 생겼죠. 순간 자식이 나의 인생 태클의 시작인 것 같은 나쁜 생각도 들었습니다. 아이 셋을 동시에 키우려니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고 스케줄도 엉망진창이 되는건 다반사였죠. 시간에 쫓기다 보니, 남의 자식들 키운다고 내 자식들을 방치하는 일도 흔해졌고요.
하지만 저는 학생들이 레슨받으러 오면 교육을 방해하지 않도록 아이들을 방구석에 밀어 넣어두거나, 애가 아프면 일하는 할머니와 병원에 가는 것, 상주 아주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제 3자의 케어를 받으며 키우고 싶지 않았어요. 일과 후에도 학생들과 영화도 보고 밥도 사주시는 싱글인 어느 대학 교수님을 보며 ‘우와! 일은 역시 싱글이 하는게 조직 입장에서는 더 좋겠구나.’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요.

어느 날은 큰아이와 둘째 아이 둘 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, “엄마가 편하게 넓은 침대에서 주무세요. 제가 보호자 자리에서 잘게요.”라는 말을 들었어요. 이때야말로 정말 자식을 잘 키웠다고 생각했죠. 한 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우고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40년쯤 지나봐야 진정 알 수 있다지만, 너무 잘 자라준 것 같아서 고마웠습니다.
아이와 보낸 시간이 저에게 있어서 태클이라고 생각했었는데,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이해시키는 데에는 전부 좋은 경험이 되더라고요.
학교에서 학생을, 특히 피아노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데 있어서 자식들을 직접 키우고 계신 건 어디에서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나만의 경험이 됩니다. 저는 대학에 있었으니, 초·중·고등 교육의 실태와 생산·소비·유통을 다 경험할 수 있었는데요. 모든 순간 열심히 살았기에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경험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적립된 것 같습니다.
잠시 뉴욕에 있을 때, 음악 천재들을 많이 만나봤는데요. 그 모습을 보며 그만두기엔 넘치는, 계속하기엔 모자라는 재능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.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더 풍부한 경험이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.

여러분, 내 아이 키우랴, 학원 원생 키우랴 너무 고생이 많으시죠? 열심히 안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시죠? 사람이 일만 하고는 못 삽니다. 이제부터라도 주변을 돌아보며 즐겨보세요. 나는 그저 나 자체로, 당신은 그저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니까요.
학생들과 함께 이 시국 속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계신 선생님들! 잘하고 있냐고요? 의심하지 마세요. 열심히 사는 게 잘사는 겁니다. 우리 조금만 더 힘냅시다.

WRITE, PHOTO 오상은
전) 숙명여자대학교 피아노교수학전공 교수
현) Jusdson University Piano Pedadogy Faculty